아름다운동행

희망까지 눈치보게하는 동행...

야
야아츠lYaatsl위본
2026.04.20 00:45 | 조회 4.1k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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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등학생 아들의 수학여행 경비로 45만 원이 청구되었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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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박 3일 강릉 일정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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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지서에 적힌 숫자를 마주하니 멈칫.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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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 학창시절 수학여행과는 이미 너무도 멀어진, 낯선 시대의 문법을 마주한 기분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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뉴스를 보니 어느 중학교는 60만 원이 훌쩍 넘는 수학여행비로 논란이 되었다고 한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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치솟은 물가와 전세버스비, 숙박비 인상을 감안하더라도 선뜻 납득하기는 어려운 금액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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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현상의 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, 단순히 물가 상승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서늘한 지점이 보인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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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늘날의 수학여행은 아이들이 함께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며 우정을 쌓는 공동체의 체험이라기보다,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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학부모의 개별적인 요구와 민원을 완벽히 차단해야 하는 맞춤형 의전 일정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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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우리 아이는 아무 데서나 못 자요”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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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우리 아이는 입이 짧아서 식단이 중요해요”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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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아이가 예민하니 이동 수단은 최고급이어야 합니다”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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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런 요구들이 하나둘 쌓이면 학교는 교육적 가치에 따른 최선의 선택보다, 항의받지 않을 무난한 선택을 하게 된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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비용이 오르더라도 말썽 소지가 적은 숙소를 택하고, 비싸더라도 타박받지 않을 식사를 고른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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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들 학교의 일정표를 보니, 조식은 호텔 조식부페, 점심은 한식부페, 저녁은 샤브부페.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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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렇게 수학여행은 점점 고비용의 조심스러운 행사가 되어가고,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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함께 웃고 부대끼며 불편함을 나누던 공동체의 시간은 점차 자취를 감춘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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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풍경은 학교 운동장에서도 반복된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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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이들의 함성과 응원 소리는 이제 교육의 활기가 아니라 소음 민원의 대상이 되었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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운동회 날 학교에 순찰차가 출동했다는 서글픈 뉴스는 우리 시대의 초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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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른바 ‘초품아’라 불리는 입지의 프리미엄과 재산 가치는 기꺼이 누리면서,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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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작 그 학교에서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생동감은 참아내지 못한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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교육의 편익은 소비하되, 교육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불편은 용납하지 않는 이 이기적인 태도.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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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음의 상처를 예방한다는 명목 아래 이루어지는 ‘성취의 하향 평준화’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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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대적 박탈감을 줄이고 자존감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는 언뜻 선량해 보이지만, 그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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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군가의 탁월함을 축하하는 공개 시상은 사라지고,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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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두가 비슷한 상장을 나누어 갖는 풍경 속에서 아이들은 중요한 성장의 기회를 잃어간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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타인의 빛나는 순간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는 법,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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패배의 쓴잔을 마시고도 다시 일어설 마음의 근육을 기르는 법,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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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러움을 동력 삼아 내일의 나를 준비하는 법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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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실 이것이야말로 삶이라는 거친 파도를 건너기 위해 학교에서 배워야 할 진짜 교육인지도 모른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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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는 상처를 줄이겠다는 명분 아래, 아이들이 스스로 단단해질 기회까지 지워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.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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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서글픈 풍경은 비단 학교에만 머물지 않는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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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름다운동행 안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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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가 깊이 경외하던 한 회원이 있었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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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위 말하는 "팬"이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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깊은 병기의 암을 이겨내는 과정에서도 그녀는 삶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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환우 본인으로서, 동생의 보호자로서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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철저한 식단과 운동으로 스스로와 동생을 지켜냈고,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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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상으로 복귀해 해외여행을 다니며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채워갔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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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녀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찬란한 서사였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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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녀가 올리는 여행 기록은 단순한 자랑이 아니었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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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행 중에도 자신의 루틴을 놓지 않으려는 치열한 의지였고,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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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과정을 기쁨으로 견뎌낸 한 사람의 조용한 승전보였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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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녀가 올린 여행기의 사진을 보며, 나의 버킷리스트를 수정할 정도로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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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 글이야말로 아름다운동행에 꼭 필요하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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투병의 정보만 오가는 곳이 아닌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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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장 깊은 어둠 속에 있는 이가 그런 글을 보며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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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나도 저곳까지 갈 수 있겠구나”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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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나도 다시 내 삶을 살아낼 수 있겠구나”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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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 희망의 마일스톤을 그릴 수 있는 곳이길 소망한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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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안타깝게도 누군가의 회복을 희망으로 읽지 못하고,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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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대적 박탈감이라는 잣대로 검열하는 시선들이 있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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피땀 어린 노력으로 되찾은 누군가의 일상을 불편함의 이유로 삼아버리는 것이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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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론 지금 이 순간 치료의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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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지만 회복의 서사를 입 다물게 하고,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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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시 살아난 이들의 기쁨을 눈치 보게 만드는 것이 과연 공동체를 위한 배려일까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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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라고 생각한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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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은 배려가 아니라 배려의 오용이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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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군가의 빛이 내 어둠을 더 짙게 느끼게 할 수는 있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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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빛을 꺼버리는 것이 답일 수는 없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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공동체가 아픔에만 안전한 곳이 되고,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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회복의 서사가 밀려나는 곳이 된다면,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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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끝에 남는 것은 결국 집단적인 절망뿐이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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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런 분위기 속에서 오랜 시간 희망의 이정표가 되어주던 선배 환우들이 하나둘 공동체를 떠나고 있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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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통의 터널을 지나 “이 길 끝에도 삶이 있다”는 것을 몸소 보여주던 소중한 이들이,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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근거 없는 오해와 불편함이라는 이름의 컴플레인에 지쳐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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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것은 단순한 회원 한 명의 탈퇴가 아니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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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름다운동행의 내일이 조금씩 사라지는 일에 가깝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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공동체란 본래 서로의 불편함과 부러움까지도 견뎌내며,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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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로의 내일을 축복해 주는 곳이어야 한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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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처를 깊이 이해하되 희망을 검열하지 않는 곳,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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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픔을 품되 회복을 밀어내지 않는 곳,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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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면서도 동시에 다른 누군가의 웃음을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는 곳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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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 공동체라야만 우리는 가장 어두운 밤에도 내일의 태양을 꿈꿀 수 있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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차마 그녀에게 다시 돌아와 달라는 말을 건네지는 못하겠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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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곳이 아니더라도 그의 삶은 이미 충분히 찬란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알기에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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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아 있는 스탭들 고민해야 할 몫이 너무도 무겁게 느껴질 뿐이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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