아름다운동행

세번째 관해까지의 나날들

쿠
쿠릉l림본
2026.03.19 00:42 | 조회 782

마음이 무너지고 하소연할 곳이 딱히 없을 때 여기에 가끔 글을 올렸는데요.

오늘 정기진료에서 완전 관해로 봐도 되겠다는 의사 선생님의 마침표를 듣고, 여기가 먼저 생각났어요.

힘들 때만 와서 징징거린게 못내 마음의 짐이었어서 희망찬 소식도 전하고 싶었거든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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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 투병 기간은 5년인데 중간에 2년은 관해 상태로 지냈어서 3년 정도라고 보면 되겠네요.

첫 발병 때는 워낙 흔하지 않은 병이라 너무 늦게 찾아서 대장천공으로 긴급 개복 후 장을 한뼘 잘라내고,

임시장루도 8개월간 달고 다니면서 항암하다가 장루복원술 후에 자가이식으로 2년간 관해 상태로 잘 지냈어요.

(아. 제 병은 장림프종인데 5년 생존률이 13%밖에 안되는 병이에요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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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데 컨디션이 점점 안좋아지다가 고열을 신호탄으로 재발이 확진되어서 여러 회차의 항암 끝에 pet-ct 결과로 관해 판정을 받았는데

거기서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3차 재발이 다시 확진되었어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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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렇게 세번째 재발될 때는 마음이 진짜 와르르 무너져서 큰 희망을 가지지 않고 주변 정리를 해놓고 항암 후 동종이식을 진행했는데요.

100%일치를 못찾아서 반일치 상태인 어머니의 조혈모 세포를 이식 받았는데, 무균실에서 하루에 6,7대씩 몰핀맞으면서 고통을 참아내던게 생각나네요.

'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조혈모 이식을 두번이나 하고 있나'하는 길잃은 원망도 뱉으면서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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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쨌든 시간은 흘러서 결국 고통은 점점 사그라들고, 이식 후 1년을 생존하며 오늘로 세번째 관해 판정을 받게 되었어요.

쓰고 나서 생각해보니 한 사람이 관해 소식을 세번이나 듣는건 좀 드문 일이긴 하겠네요.

이 또한 제 인생 업적 아닐까 싶습니다.

여전히 면역억제제를 먹으며 자잘한 불편함(피부 간지럼증으로 스테로이드 복용)은 있지만 이것 역시 시간이 해결해 줄거라 믿고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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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 이제 막 40대 중반에 닿은 짧은 삶이지만 여러 번의 고비를 넘기다 보니 삶에 대한 태도가 이전과 참 많이 바뀌었어요.

특히 행복에 대한 가치관이 많이 변했는데, 행복은 인생의 목표를 달성했다던가 하는 거창한 것에서 오는게 아니라

사실은 일상에서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스스로 행복하려고 온 힘을 다해 노력해야 오더라고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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긴 입원 기간에는 점심밥으로 잔치국수(최애)가 나온다고 하면 그게 뭐라고 아침부터 점심 시간만 기대하기도 하고,

퇴원해서는 거실에 꽃 한송이 화병에 꽂아두고 지나가며 볼 때마다 이뻐해주고..

그렇게 그저 바로 앞에 내가 가진 작고 소중한 것의 행복을 생각하며 지내니까 두세달의 장기 입원도, 극심한 고통의 순간도

결국 제 마음에는 큰 생채기없이 잘 지나갔어요. (치료하면서 우울증 걸리는 분들이 참 많더라고요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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반면 제 몸에는 생채기가 꽤 많은 편이에요.

복부에 한뼘짜리 개복 흔적, 장루 달았던 상흔, 가슴팍에는 과거 케모포트 흔적 두개에 지금 있는 것도 제거하면 세개째고 등등..

전장이 따로 없지만 여기까지 버텨준 몸이 참 감사하고 그렇네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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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실 이런 생각도 들어요.

5년에 걸쳐 수십번의 항암을 하고, 전신의 생명력을 극한으로 몰아넣는 이식도 두번이나 하고, ct도 수십번은 찍은 것 같고,

pet-ct도 많이 찍었는데 이런 몸으로 남들 평균 수명까지 살겠다는건 욕심이겠거니 하는 마음이요.

그래서 밥 한끼도 소중히 차려먹다보니 와이프 요리 실력이 늘어나는 장점도 있네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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새벽 감성에 젖어 그 때의 생각들이 마구잡이로 떠올라서 횡설수설하게 되네요.

카페 특성상 오는 분들 대부분이 힘든 날을 보내고 있을텐데 치료하면서 마음의 평안이 조금 더 자주 찾아오길 응원할게요.

아래는 처음 발병했을 때 가장 위로되던 구절이에요. 환자분도, 보호자도 모두 힘내세요.

슬의생2-2화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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